첨백당 대구 동구 평광동 국가유산

맑은 아침 햇살이 산자락을 비출 때, 대구 동구 평광동의 첨백당에 도착했습니다. 들판 끝에 자리한 고택은 고요했고, 기와지붕 위로 얇은 안개가 살짝 걸려 있었습니다. 첨백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 권상일이 살던 집으로, 현재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호인 ‘첨백(瞻白)’은 ‘흰 구름을 바라본다’는 뜻을 가진 이름답게, 건물 뒤로 펼쳐진 산의 능선과 구름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처마 밑을 지나며 나무문을 살짝 흔들었고, 마루에는 햇살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세월이 오래 흘렀지만, 그 안에 흐르는 기운은 여전히 단정했습니다.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은 집이었습니다.

 

 

 

 

1. 찾아가는 길과 첫인상

 

첨백당은 팔공산 자락 아래 평광동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구 도심에서 차량으로 약 30분 정도 거리이며, 국도에서 좁은 시골길로 접어들면 논과 밭이 이어집니다. 입구에는 ‘국가유산 첨백당’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소나무숲 사이로 낮은 기와지붕이 보입니다. 대문을 지나면 마당이 넓게 열리고,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별당이 단정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주변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대청마루가 마을을 향해 트여 있었습니다. 첫인상은 ‘고요한 균형’이었습니다. 인위적인 장식은 없었지만, 기둥의 간격과 마루의 높이, 담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햇살이 마루 끝에 닿을 때, 집이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 건물의 구조와 건축미

 

첨백당은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별당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 중기 양반가입니다. 정면 5칸 규모의 사랑채는 팔작지붕 형태로, 대청마루를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방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둥은 붉은빛 소나무로 세워졌으며, 초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다듬어 고정되어 있습니다. 대청의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어 구조적인 미를 보여주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남쪽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안쪽 공간의 사생활을 보호하며, 지붕의 선이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서쪽 끝에는 작은 별당이 있어 독서와 휴식 공간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첨백당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균형과 실용미가 돋보이는 건축이었습니다. 나무와 흙, 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집이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주인의 삶

 

첨백당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이 지은 고택입니다. 그는 청렴한 성품과 학문적 덕망으로 알려졌으며, 낙동강 동쪽 지역의 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첨백당’이라는 이름은 구름처럼 흰 마음을 지니겠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권상일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글을 짓고 학문을 닦았습니다. 집의 구조는 그의 삶의 철학을 반영하듯 검소하면서도 절도 있습니다. 대청에는 그가 남긴 시구가 적힌 편액이 걸려 있고, 글씨는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그는 부귀보다 평정을 택했고, 학문보다 도를 좇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첨백당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한 선비의 정신이 머문 자리였습니다.

 

 

4. 보존 상태와 관리

 

첨백당은 세월이 오래 흘렀음에도 원형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기둥과 서까래는 일부 보수 작업을 거쳤지만, 대부분이 원재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붕의 기와는 새로 얹었으나 형태와 질감은 원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루의 나무는 발걸음에 따라 미세하게 울리며, 그 소리마저 고즈넉했습니다. 담장은 일정한 높이로 단정히 이어져 있고, 마당의 돌계단은 모서리가 부드럽게 닳아 있었습니다. 주변 정원에는 오래된 감나무와 대나무가 자라,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매년 봄과 가을에는 후손들이 찾아와 청소와 보수를 직접 한다고 합니다. 손길이 느껴지는 보존이었고, 그 덕분에 고택의 생명력이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5. 주변 탐방 코스와 인근 명소

 

첨백당을 둘러본 후에는 평광동 일대의 한적한 농로를 따라 걸어보길 추천합니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평광서원이 있으며, 이곳 역시 권씨 문중의 학문 전통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조금 더 이동하면 팔공산 자락의 평광저수지와 평화로운 논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억새가 들판을 덮어 고택과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차로 15분 거리에 갓바위 약사암이 있어 종교와 전통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하루 코스로 적합합니다. 인근 전통 찻집에서는 대추차와 유자차를 맛볼 수 있고, 지역 농산물로 만든 간단한 식사도 즐길 수 있습니다. 첨백당에서 시작해 자연과 역사를 함께 느끼는 여정은 하루가 모자랄 만큼 풍성했습니다.

 

 

6. 방문 팁과 유의사항

 

첨백당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방문 시에는 신발을 벗고 마루 위에 오를 수 있으나, 내부 방 출입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방문객이 많지 않아 조용히 둘러보기 좋고,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으므로 긴 옷을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에는 마루가 차가워 두꺼운 양말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돌계단과 마당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고택의 구조물이나 창살에 손을 대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만이 들리는 그 정적이 첨백당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첨백당은 단순한 옛집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철학이 응축된 공간이었습니다. 대청마루에 앉아 산과 들을 바라보면, 권상일이 느꼈을 고요한 평정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건물의 선은 단정했고, 공간의 숨결은 따뜻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 바로 ‘겸손과 절제’가 이 집의 본질이었습니다. 햇살이 기와 위로 부드럽게 번질 때, 집 전체가 하나의 호흡처럼 느껴졌습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문간에 서서 바라본 마당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마음을 맑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초여름 매미소리가 들릴 때 찾아, 첨백당의 또 다른 시간의 결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첨백당은 대구가 품은 ‘선비의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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